김상철 - 수묵담채
첫 전시의 추억
오늘은 제 첫 번째 전시가 있는 날입니다.
처음으로 제 작품이 인쇄가 되어 실린 팜플릿을 보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두터운 팜플릿 속에 실려 있는 제 작품은 굳이 찾지 않아도 절로 펼쳐집니다.
요 며칠 동안 계속 그 자리만 펼쳐 보았기 때문이지요.
조금은 어색해서 쭈뼛거리며 전시장에 들어섭니다.
실은 저는 진작 전시장에 도착했었습니다.
공연히 계면쩍어서 시간을 때우다가 이제야 들어서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무리지어 한가로이 잡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흘낏 둘러보니 제 그림이 한 구석에 걸려 있습니다.
비록 가운데 좋은 자리가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이지만 내심 대견할 따름입니다.
액자도 끼웠고 조명을 받고 보니 제법 그럴싸합니다.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혼자 으쓱하여 폼을 잡아 봅니다.
입구가 떠들썩하는 걸 보니 유명한 평론가 선생님이 오신 모양입니다.
쪼르르 달려가 넙죽 인사를 올리는 친구 녀석의 넉살이 참 부럽습니다.
마음은 냉큼 달려가 출품한 작가라고 인사하고 싶지만 차마 그러질 못합니다.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으며 애써 태연한 척 작품들을 둘러봅니다.
누군가가 제 작품 앞에 다가가 유심히 바라봅니다.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제 신경은 온통 그쪽에 쏠립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제 작품이 이상해 보입니다.
온통 허점투성이에다가 촌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내처 달려가 몸으로 작품 앞을 가로막고 싶어집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뒤풀이에서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소주잔을 들다 무심코 팜플릿을 펼쳐 봅니다.
또 어김없이 제 그림 있는 페이지가 펼쳐지고 절로 눈이 갑니다.
혹시 누가 볼 새라 무안해서 씩 웃고는 얼른 책을 덮습니다.
한편 대견하기도 하고 또 한편 부끄럽기도 한 이런 마음을 숨기려고
얼마나 술잔을 채우고 비웠는지 모릅니다.
다음날 숙취로 헤매며 속을 온통 비워내다 문득 묘한 생각이 듭니다.
이러다가 작가가 되 보기도 전에 술에 먼저 죽을 것 같다고..
그리고 혼자 반문해 봅니다.
“정말 작가가 되긴 된 거야..?”
첫 전시는 온몸이 해체되고 죽음과 부활의 곡선을 부단히 교차시키며
작가되기가 여간 만만치 않은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첫 전시의 추억입니다.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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