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글씨
작은 전시도록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도록의 표지에는 작가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합니다.
그런데 그 글씨가 매우 색다릅니다.
얼핏 보면 어린 아이가 쓴 것 같이 아주 유치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서예의 대가가 쓴 것 같이 묘한 맛이 있습니다.
전시 오픈 날에 맞추어 전시장에 나갔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표지 글씨에 대해 물었습니다.
작가는 계면쩍은 얼굴로 머뭇거리며 답을 합니다.
“실은 제 어머니가 쓰신 겁니다.
서예 공부도 한 적이 없으시고 특별한 교육도 받지 못하셨지만
이번에 제가 일부러 부탁을 드렸어요.”
평생 갖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한껏 아들을 뒷바라지하여 공부시켰더니
아들은 퍽이나 많이 배워 고상한 예술이란 것을 한답시고 언제나 바빴겠지요.
예술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 편이었지요.
그 아들이 모처럼 찾아와 자기 이름 석 자를 적어 놓고는 써주시기를 청한 것입니다.
평생 붓 한번 제대로 들어본 적 없던 어머니는 아마 기도하듯이 아들 이름을 적으셨겠지요.
마치 그 아들을 당신 뱃속에서 받아 내시듯이
조심스럽고 또 정성스럽게 아들의 이름을 쓰고 또 쓰셨겠지요.
하지만 서툰 글씨는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검고 흰 글자가 어디 당신 귀한 아들만 하겠습니까.
아들은 어머니가 써주신 수많은 이름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도록의 제일 앞머리에 고이 모셔 표지 글자로 삼은 것이지요.
도록에 적힌 이름 석 자의 다듬어지지 않아 투박하고 거친 모양은
세련과는 거리가 먼 시골 고향집 어머니 모습 그대로입니다.
글자가 들쭉날쭉 엉성하고 가지런하지 못한 것은
마치 대충 차려낸 듯 하지만 언제나 아들의 입맛에 딱 맞던 어머니의 손 맛 같습니다.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돌에 새긴 듯 흔들리지 않음은
자나 깨나 먼 곳에 있는 아들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어머니의 마음이겠지요.
허투루 흐르지 않고 단정하게 마감하고자 애씀이 역력하여 오히려 안쓰러운 모양은
언제나 정성이 모자랄까 조바심 내시던 한결같던 어머니의 평생이었습니다.
치졸한 듯 순진하기만한 아들의 이름 석 자는
전시장의 어떤 작품보다 빛나는 것이었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초라하고 세련되지 못한 자태가
행여 고상한 예술을 하는 아들에게 누가될까 스스로 염려되어
전시장 앞까지 다 와서도 결국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더랍니다.......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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