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추운 겨울날의 회상
겨울답게 연일 매섭게 추운 날씨입니다.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고 어딘가 따뜻한 곳이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이런 날씨가 되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어느 겨울날 한 선배의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후미진 골목길 구석 지하에 자리한 그 선배의 작업실은 언제나 어둡고 추웠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그나마 햇볕이라는 드는 바깥이 오히려 더 따뜻했습니다.
겨우내 연탄 한 장 때지 못했을 작업실은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 춥습니다.
낮은 문에 머리를 조심하며 좁고 작은 골방 같은 작업실에 들어섭니다.
캔버스와 화구들이 어지러운 가운데 백열등이 아픈 이의 얼굴처럼 희뿌옇습니다.
을씨년스런 작업실 구석 연탄난로 곁에 선배가 앉아 있습니다.
웬일인지 난로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습니다.
돈이 없어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했던 선배에게 여유가 생긴 모양입니다.
자연스럽게 다가가 주모니에서 손을 빼 난로를 쬐면서 안부를 묻습니다.
그저 씩하고 웃어버리는 선배의 얼굴은 영락없는 예술가의 그것입니다.
꼴초의 마지막까지 태워 물고 있는 그 얼굴은 마르고 창백합니다.
그나마 난로라도 필 수 있으니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의자를 끌어다 난로 곁에 앉으려는 순간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분명 난로는 달아올랐는데 작업실이 너무 춥습니다.
불을 쬐려 주머니에서 빼낸 손이 시리다 못해 아립니다.
조심스레 난로를 살피고는 화들짝 놀라 선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선배는 또 말없이 씩 웃습니다.
난로는 언제나처럼 그렇게 꺼져 있었습니다.
춥고도 추운 겨울날 연탄 한 장 땔 여력이 없던 선배는
남은 물감으로 난로에 열기를 그려 넣은 것이었습니다.
"............................."
갑자기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이미 뺸 손을 다시 주머니로 거둬들이기도 무안하여
그냥 그 자세로 말없이 엉거주춤 차디 찬 난로를 쬡니다.
돌아 나오는 길......
밖은 어느새 어두워졌고 눈이라도 오려는지 하늘은 무겁습니다.
무엇에 체한 듯 가슴은 먹먹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툭 하고 함박눈 한 송이가 얼굴에 떨어집니다.
정녕 운 것도 아닌데 눈가가 절로 젖어듭니다.
그해 겨울은 그렇게 춥고 서러웠었습니다.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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