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아픔
요 며칠 배가 아픕니다.
딱히 어디가 어떻다고말할 순 없지만 분명히 배가 아픕니다.
그렇다고 병원에 갈 일은 아닙니다.
이 병은 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배가 아픈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요.
몇 해 전 친구들이 어울려 그룹전을 한다고 할 때 갑자기 배가 아팠습니다.
그때 아팠던 배는 얼마간 지속되다가 절로 나았습니다.
훗날 제일 가까운 친구가 공모전에서 입선을 했다고 했을 때도
이 병은 도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별별 이유를 찾아내어 친구를 씹어댔습니다.
평소 여기저기 알랑거리더니 드디어 그 덕에 상을 받는구나...
실력이야 걔보다 내가 훨씬 낳지...
아마 심사에 들어가신 교수님과 무슨 관계가 있을거야...
난 적어도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할거야...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배 아픔은 치유될 수 있었고 얼마간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의 개인전 도록이 날아 왔습니다.
순간 그가 잊고 있었던 배 아픔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정신조차 아득해 졌습니다.
혹시 효과가 있을까 해서 친구의 흠집을 찾아내어 씹어보기도 하고
배 아픈데 좋다는 소주도 마셔보았지만 좀처럼 효과가 없습니다.
그렇게 죽을상을 하며 며칠을 보내며 겨우 속을 달랬습니다.
전시 오픈 날 아픈 배를 주려잡고 전시장에 나가 봅니다.
배가 아프니 웃어도 얼굴이 자꾸 부자연스럽고 어색합니다.
작품들을 둘러보니 배는 더욱 아파집니다.
그럴싸한 작품들이 죽 둘러놓고 주인공이 된 친구 모습이 부러워 절로 주눅이 듭니다.
어쩌면 이번 배 아픔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사실 그 후로도 이렇게 배가 아픈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성이 되었는지 그렇게 심하게 아프지 않았습니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조금은 비굴한 얼굴로 전시 뒤풀이도 곧잘 찾아갑니다.
이렇게 배가 아프지 않으니 편하기는 한데
자꾸 초라해지는 것 같은 자괴감에 여럿이 어울려도 언제나 허전하고 외롭습니다.
오늘도 친구 오픈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걸음이 자꾸 흐트러집니다.
이건 그저 몇 잔 마신 소주에 취한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이제 웬만해서 배가 아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인이 되어 세사에 충분히 너그러워진 것일까요?
아니면 이제 야성조차 사라진 박제된 동물이어서 일까요 ?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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