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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 수묵담채
화가의 아내
매주 수요일은 인사동 화랑 오픈날 입니다.
수많은 전시들이 열리고 해 저물 무렵이면 식당마다 뒤풀이가 열리게 마련입니다.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들로 뒤풀이 자리는 언제나 흥겹고 활기가 넘칩니다.
모처럼 넥타이를 매고 맵시를 낸 사람은 필경 오늘 오픈을 한 작가일 것입니다.
그는 손님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소주병을 들고 연신 술을 따르고 마십니다.
고생해서 어렵게 마련한 개인전이기에 어지간히 흥분되고 기쁜 모양입니다.
술자리는 밤이 깊어가도 도무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질 않습니다.
서로 어울려 먹고 마시고 떠들며 어울리는 풍경 속에
한 여인만이 이방인마냥 식당 한쪽 구석에 어색하게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 당체 끼어들기가 어색한 이 사람은
남편의 동문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아닙니다.
그저 그림 병 걸린 잘난 남편을 만나 낯선 인사동까지 불려온 화가의 여자일 뿐입니다.
그녀는 그저 속으로 오늘 치를 술값과 음식 값을 가늠하느라 정신이 아득합니다.
그리고 집에 두고 온 어린 아이들 생각에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전시를 하느라 대책 없이 축난 집안 살림입니다.
당연한 듯 호기 있게 안주를 추가 주문하는 화가의 여자 후배의 말에
그녀는 아줌마가 되어 안주를 나르고 부족한 술을 채워 놓습니다.
얼핏 들여다 본 방안에 이미 술 취한 남편의 눈 풀린 얼굴이 들어옵니다.
진작부터 주눅 들어 서러운 마음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집안 살림 걱정에 눈물 한 방울, 그것도 모르고 술 취한 남편의 야속함에 또 한 방울.....
한 사람이 울고 있습니다.
화가의 아내입니다.
오래된 소설, 현진건 선생의「빈처」에 나오는 한 대목이 절로 떠오릅니다.
“아직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무명작가인 나를
저 하나만 깊이깊이 인정해준다.
그러길래 그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욕구도 참아가며
오늘날까지 몹시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하고 나를 도와준 것이다.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나의 천사여!”
울고 있는 천사......
화가의 아내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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