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날들
글·그림 | 김상철
살아서 숨쉬고 있는 것
먹고 마실 수 있는 것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것
걸어 다닐 수 있는 것
편히 잠잘 수 있는 것
눈뜨고 볼 수 있는 것
먹고 배설할 수 있는 기쁨
아름다운 꽃을 보고 향기를 맡는 기쁨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
기도를 할 수 있는 기쁨
움직일 수 있는 고마움
앉아 있을 수 있는 고마움
좋은 그림을 보거나 또한 내가 그릴 수 있는 고마움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 고마움
이 글은 불꽃처럼 혼을 사르고 가신 고 하인두 선생의 병상 일기입니다.
큰 수술을 마치고 병상에서 감사할말한 일들을 하루에 다섯 가지씩 적은 것이지요.
별반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적인 것들을 나열하고 있는 이 글 속에서
새삼 하루하루의 소중함과 그 일상의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뜨거운 가슴을 지녔던 한 예술가의 절실한 이야기는
그래서 다른 이의 가슴에 옮겨져 혼 불을 지르는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는 이런 감사해야 할 일들은 이미 충분히 충족되었고
감사해야 할 여분의 것들로 넘쳐 지나칠 지경입니다.
한해가 벌써 절반이나 지나버린 계절에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니
새 다이어리 첫 장에는 늘 그랫듯이 올해의 다짐과 각오가 박제되어 박혀 있습니다.
이제는 그 다짐이 너무도 아득하여 낯설고 새삼스럽게까지 느껴지니
이는 정녕 여느 한 해처럼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일 것입니다.
불꽃처럼 살아도 미처 다 태우지 못할진대
이런 나태함과 무기력함은 영혼을 불완전 연소시켜
매캐한 오염물질만을 뿜어 낼 따름입니다.
다시 한 번 내 영혼에 불씨가 남아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하루를 감사하며 새삼 진정한 영혼의 완전한 연소를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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