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김, 아가야,
아가씨, 언니, 쿠레이타 ... ???!!!
글·그림 | 김상철
예술행정이라는 고상한 학문을 하고 백수로 지내다가
교수님 추천으로 어렵사리 한 화랑에서 큐레이터라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큐레이터란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창의적인 일이라 배웠는데
말 그대로라면 정말 멋있고 자랑스러운 일을 하게 된 셈이지요.
그런데 막상 화랑에 출근하고 보니 현실은 참 아는 것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저를 아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곤 하지요.
사장님은 저를 "김양아" 부르고는 "차나 한 잔 가져와라"하십니다.
그나마 "미스 김" 이라 부르지 않는 것이 다행입니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화가께서는 저를 "아가야"라고 부르십니다.
연세가 그러하시니 그럴만하다고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이미 '큐레이터'라는 폼 나고 어엿한 직업을 가졌는데
"아가야"라는 호칭은 아무래도 못내 서운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 제 어머니뻘 되시는 여류작가께서는 "아가씨"라고 부릅니다.
무슨 식당의 음식 나르는 사람도 아니고 장소가 화랑이고 명색이 큐레이터인데
"아가씨"는 좀 폼이 안 나는 저렴한 이름이지요.
조금 젊다는 여류작가들은 저를 "언니"라고 부릅니다.
아니 화랑이 무슨 옷 파는 가게고 큐레이터가 종업원인가요?
뻔히 "큐레이터"라는 말이 있는데 굳이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친근감의 표시일거라고 자위해보지만 조금 많이 섭섭한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어떤 작가 분은 발음이 안 좋으신지 매번 저를 "쿠레이타"라고 부릅니다.
"선생님 저는 '쿠레이타'가 아니라 '큐레이터' 거든요!"
제발 제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세요.
저는 오늘도 이런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그 명칭에 맞는 여러 일들을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사장님께는 창의적인 커피와 녹차를 가져다 드리고
할아버지 원로작가께는 젊은사람 특유의 창의적인 웃음과 친절로 인사를 드립니다.
또 아주머니, 언니뻘 되는 작가들께는 창의적으로 수다를 떨어 드리고
먼 곳에서 오신 발음이 세는 작가 분께는 창의적으로 어설픈 대화를 이어갑니다.
저는 분명 이 땅의 창의적인 '큐레이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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