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그 겨울, 눈 오던 날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겨울이라 전시장 밖은 빨리 어두워지고 날씨는 금방 추워집니다.
전시장 앞에는전시를 마친 작품들이 빠져 나가느라 부산합니다.
다들 아는 사이인지라 선배님 먼저 싣고 떠나라 양보하며 순서들을 기다립니다.
이렇게 작품과 작가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젊은 작가 몇몇이 남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용달차를 기다립니다.
그때 한 구석에 숨은 듯 어색하게 서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서대로라면 이미 차를 타고 떠났어야 할 윗선배입니다.
후배들은 미안해하며 먼저 차를 이용하시라 권합니다.
그러나 선배는 한사코 어색하게 사양하며 뒤로 물러섭니다.
이렇게 하나 또 둘씩 작품과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 사이
선배의 모습도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작가들이 떠나버리고 날은 이미 어두워져 손발마저 시린 밤
전시장 뒤편 후미진 뜰에서 빨간 반딧불이 하나가 날아오릅니다.
슬쩍 사라졌던 선배되는 이가 피워 문 담뱃불입니다.
사실 선배는 돌아갈 버스비만 달랑 있을 뿐 용달비가 없었습니다.
설령 있다하더라도 그 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이에게는 얼마 안되는 돈일지라도 자신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것입니다.
비록 몇 푼의 용달비라지만 어린 아이의 분유 값으로 계산도 해보고
팍팍한 살림을 힘겹게 꾸려 나가는 아내의 삶도 가늠해 봅니다.
어둠 속에서 빨간 불이 길게 한번 켜졌다가는 이내 꺼져버리고
전시장 주변은 다시 조용한 적막에 들게 되었고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다음날 쌓인 눈을 치우던 경비아저씨가 전시장 뒤편 담장 구석에서
눈 속에서 부서져 버린 캔버스를 발견하였답니다.
커다란 돌덩이로 내려친 캔버스는 박살이 나버렸고
주변에는 담배꽁초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더랍니다.
그 후 그 선배는 소식도 듣문드문 들릴 뿐 도무지 얼굴 보기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여러 일들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삶이라는 예술을 하는 것이겠지요.
올 해도 눈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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