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예술을 알아?"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언제나 이맘때면 여러 모임들로 분주하게 마련입니다.
오늘은 어린시절을 함께 했던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어린시절에는 코흘리개 철부지들이었지만
이제는 흰머리가 제법 잘 어울리는 중년의 나이들이 되었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나마 먹고 살 만한 처지에 있는 이들입니다.
사실 그림을 그리며 별 볼일 없이 살아온 나에게는 이 자리가 그다지 마뜩찮았습니다.
그나마 친한 친구의 채근이 있었기에 마지못해 나선 자리입니다.
서로 자식자랑 사업자랑으로 은근히 경쟁하듯 과시하며
크고 좋은 외제 차와 골프, 해외여행 이야기로 화제가 몰아가고 있을 때
딱히 내놓고 자랑할 것이 없는 나는 그저 술이 벗일 따름입니다.
정당히 술기운이 오르자 성공한 친구들의 생활이 은근히부럽기도 하고
예전에는 형편없이 찌질했던 녀석들이 저렇게 성공했다는 것이 샘이 나기도 했습니다.
말만 들어도 다들 성공한 것 같은 친구들을 바라보며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어렵사리 길을 물어 모임에 참석한 처지가 한심스럽고
예술 한답시고 평생을 고생만 시킨 아내가 떠올라 기름진 안주도 맛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린시절 친했던 친구들이 성공을 했다니
혹시 그림이나 한 점 사주지 않을까 하는 간사한 마음이 자꾸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때 내 책가방을 들며 졸병노릇이나 하던 별 볼일 없던 녀석이
지금은 제법 성공했는지 개기름이 번지레한 채 거만하게 술잔을 들고 말을 건넵니다.
"야! 너 아직도 그림그리지? 그리다 망친 것 있으면 나 한점 다오."
갑자기 모두의 눈길이 나에게 쏠리며 너도나도 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봅니다.
갑작스런 말이지만 마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지고 말문이 탁 막혀버립니다.
엉겹결에 어색한 웃음으로 말을 흘려버리는데 꼴이 말이 아니고 기분이 이상합니다.
홀로 빠져나와 어둔 하늘 먼 곳에 눈길을 두고 있자니
몇 달 전 끊은 담배 생각이 절로 절실합니다.
그길로 그냥 회식자리를 나와 어두운 골목길을 걸으며 혼자 중얼거립닏.
"그래! 나 아직도 별 볼일 없는 그림 그린다."
"망친 것 있으면 하나 달라고? 망친 것이 어찌 작품이겠냐!"
"너희도 어디 쓸데없는 돈이 있으면 내 그림이나 한 점 사봐라!"
"니들이 예술을 알아? 무식한 것들... "
어느 집 개가 들었는지 맥없이 혼자 짖습니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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