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이 되면 얼어붙었던 땅이 풀리고 새싹들이 돋아나겠지요. 새싹들은 조용히, 그러나 부지런히 서둘러 세상에 얼굴을 내밉니다. 여린 떡잎들은 마치 기도를 하듯이 가지런합니다. 경건하게 손을 모아 세상에 간절한 인사를 하는 것이지요. 날이 풀리고 햇살이 따뜻해지면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부지런히 자라 제각기 야물어지고 무성해 질 것입니다. 연두색은 녹색이 되고 녹색은 다시 초록으로 갈색으로 색을 바꾸며 여린 싹은 잎이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제 몸을 바꿔가며 계절의 순환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붉은 색 꽃 몽우리에서 노란 꽃이 피기도 하고 초록색 잎 사이에 붉은 꽃이 달리기도 합니다. 해마다 천변만화하는 요지경이 펼쳐지는 것이지요. 자연은 해마다 계절을 바꾸어가며 우리들에게 모델을 서주는 셈입니다. 예술의 모든 영감은 이에서 비롯되게 마련이어서 자연을 예술의 원천이자 근원이라 하는 것이겠지요. 영감이 부족하면 억지를 부리게 마련입니다. 억지는 아집을 낳고 아집은 결국 죽은 형식을 만들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형식은 겉은 그럴듯하지만 결국 생명력 없는 죽은 것이겠지요. 붓을 드는 그대여! 비오고 눈 내리고 또 꽃 피고 바람 부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오로지 한 길을 가는 그대의 작업이 굳은 의지의 산물인지 아니면 대책 없이 고루한 타성의 아집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대는 혹시 감동 없는 죽은 형식에 매달려 이미 썩은 고목에 어설픈 붉은 꽃을 그리며 이 봄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눈을 들어 창밖을 봅시다. 그리고 간절히 나를 부르며 더불어 변화하며 커 갈 것을 권하는 저 해맑은 봄의 소리 없는 호소에 귀기울여보지 않겠습니까? 곧 꽃피는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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