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꽃이여!
글·그림 | 김상철
몇 해 전 재래시장 언저리에서 우연히 산 춘란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고 여린 꽃대가 오르고 있었습니다.
베란다 한구석에 버려진 듯 놓아두다가 어쩌다 생각이 나면 물이나 가끔 주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꽃대가 올라오니 그 자체가 신기하고 경이롭습니다.
특별히 난을 키울지도 모르고, 또 그것이 정말 춘란인지도 모르겠지만
해를 묵어가며 그저 구석에 놓여 있던 작고 볼품없던 것이
살아 있는 것만도 고마운데 꽃까지 피우려 하니
더없이 반갑고 애틋하여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본래 좋은 이를 만났따면 어엿한 난분에 심어져
날마다 잎사귀를 맑은 물로 씻기우고 때맞춰 거름도 주어
곱고 향기로운 꽃을 벌써 몇 차례나 피우며 사랑받았겠지요.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잎사귀는 넋 나간 이의 산발한 머리 같고
갈색과 연록이 교차하는 삶과 죽음이 혼재한 어지러운 모습은 보기에도 안타깝지만
그래도 가냘프지만 꽃대를 밀어 올리는 것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는 의지겠지요.
어찌 피우고자 하는 것이 그저 어설픈 춘란에만 있겠습니까?
어린 시절 품었던 수많은 꿈들은 삶이라는 차고 매서운 현실에 눌려
어느새 죽은 난 잎처럼 갈색으로 퇴색되어 흔적조차 아련하고
귀한 난분에 가꿔지기는 커녕 거칠고 투박한 오지항아리에 심겨져
마치 파뿌리 부추 잎처럼 헝클어지며 모질게 자라 본연의 품격은 찾아볼 수 업지만
그래도 저마다 마음속에는 차마 피우지 못한 애잔한 꽃망울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이제와 새삼 분갈이를 하고 서둘러 거름을 준다 한들
이미 쇠잔해 버려 모양조차 흐트러진 것이 제대로 꽃이나 피우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떄만 되면 죽지 않고 솟아오르고자 하는 꽃 몽우리를 확인한 이상
더 이상 이것을 그저 모른 채 잡초마냥 바치해 놓을 수만은 없는 일이겠지요.
이제라도 때때로 물이라도 주고 볓 잘 드는 곳을 찾아 분을 옮겨 볼 일입니다.
해묵은 잎사귀의 먼지도 닦아주고 때늦었지만 비료라도 주어
어렵사리 피어오르려는 그 여리고 모진 꽃 몽우리를 반길 일입니다.
계절은 겨울, 바람은 차고 날은 이미 저물어가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는 것이 죽은 것 같고 남는 것은 그저 원망과 회한에 찌든 탄식밖에 없겠찌요.
머지않아 찾아 올 그 봄날, 온갖 꽃들이 흐드러질 때
붓을 드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도 한숨과 눈물을 먹고 자랐지만
의연히 자신의 이름으로 피는 찬연한 꽃 한 송이가 달려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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